병원 연혁
처음부터 현재까지...
당 병원의 역사는 19세기 맨하튼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시기 의료 사회는 엑스레이라는 최신 기기를 막 발명했습니다. 당 병원은 1892년 맨하튼에 있는 East 123rd Street에 있는 허름한 주택에서 미혼모를 위한 쉼터로 설립되었습니다. 초기 병원 이름은 여성 갱생원(Rescue Home for Women)으로, 구세군에서 운영했습니다. 이 시설은 구세군이 미국 내에 세운 초기 시설 중 한 곳이었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 중 이 시설은 지원병의 부양 가족에게 의료 지원을 무료로 제공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불경기와 함께 이 시설의 명칭은 부스 메모리얼 병원(Booth Memorial Hospital)로 변경했습니다. 맨하튼 내에서 2차례 옮긴 후, 최후에 퀸즈의 플러싱(Flushing)에 영구히 자리 잡았습니다. 설립 후 약 60년 간 이 시설은 East 15th Street에서 진료했습니다. 1950년 대에 발발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베이비 붐이 발생하자, 이스트 리버: 퀸즈의 동쪽에 있는 넓은 농촌 지역에 종합 병원 설비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구세군은 병원을 퀸즈로 옮기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퀸즈가 신뢰하는 전문 기술과 최고의 서비스 제공
부스 메모리얼 병원이 1920년대, 30년대, 40년대까지 맨하튼에서 번창하기는 했지만, 더 큰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습니다. 1950년 대, 뉴욕 메트로폴리탄 지역이 변화한 것입니다. 특히, 퀸즈의 급격한 인구 증가를 지원할만한 의료 서비스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본 구세군은 병원을 맨하튼에서 옮겨 과도하게 성장한 퀸즈의 플러싱에 있는 빈 구역에 새로 현대적인 의료 시설을 짓겟다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 시설이 지어진 곳이 바로 현재 당 병원의 자리입니다. 침상 210개, 요람 45개를 보유한 당 병원이 1957년 2월 14일, 성대하게 개원했습니다. 그리고 노인 환자를 위한 35개의 병상이 있는 윌리엄 레지던스를 건설했습니다. 다른 병동에는 미혼모를 위한 구세군 프로그램에 사용되었습니다. 이곳이 바로 펄킨스 파빌리온(Perkins Pavilion)입니다.
이름과 후원은 바꼈지만, 정신과 서비스는 그대로...
설립 초기부터 구세군은 위대한 봉사 정신과 환자 중심의 치료 정신을 보여주었고, 그 정신은 아직까지도 이 병원에 남아 있습니다. 구세군은 1990년 초에 자선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미국 전역의 급성질환 치료 병원 경영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92년, 당 병원은 뉴욕 병원-코넬 의료 센터의 자매 병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맨하튼과 퀸즈에 있는 전통의 부스 메모리얼 병원은 뉴욕 병원 퀸즈 의료 센터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병원 이름을 법적으로 개정하던 중, 사용이 편리하도록 뉴욕병원 퀸즈로 줄였습니다.
현재 당 병원의 역할
1997년 뉴욕 병원과 프레스비테리안 병원이 합병하여 새로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 케어 네트워크를 설립했습니다. 이들 기관은 현재 각각 뉴욕-프레스비테리안 병원과 뉴욕-프레스비테리안 의료 시스템이 되었습니다. 이 의료 시스템은 현재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의료 시스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현재, 뉴욕병원 퀸즈는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의료 시스템의 자랑스러운 회원사이자 코넬 대학 웨일 의대의 자매 기관으로서 그 지도력과 특권으로 포괄적이고 혁신적인 의료 기관으로 성장했습니다. 당 병원은 퀸즈 지역에 전문 치료 센터와 클리닉을 운영하며, 대부분의 전문 분야에 대해 세계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뉴욕병원 퀸즈는 작년 한 해 동안 34,000명 이상의 환자를 수용하고, 133,000명 이상의 외래 환자가 방문했으며, 응급 의학부를 통해 80,000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한 침상 439개의 급성질환 치료 병원으로 성장했습니다. 당 병원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극적으로 성장했으며, 제공하는 전문 기술 역시 정비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처음 설립자의 봉사 원칙만은 변하지 않고 꾸준히 유지되고 있습니다.